[연재칼럼] 50 이후의 남자, 아저씨가 사는 법

나이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 이런 말이 있다. 유태인 속담이라고 한다. 어른이란 무릇 쓸데없는 참견이나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그 말대로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사진=Pixabay

자꾸만 가르치려 드는 사람

내 주위에 이런 지인이 있다. 이 사람은 누가 무슨 얘기만 하면 부정적 자세부터 취하고 본다. 누군가 자식 교육 걱정을 하거나 먹고 살 길을 강구하려 머리를 쥐어 짜 사업 아이디어를 말하면, 백 퍼센트 ‘안 된다’는 부정적인 의견을 내고 더 나아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렸냐’는 식으로 상대방을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 취급하며 훈계하거나 자꾸만 가르치려 든다. 그런데 이런 사람, 아주 많다.

얼마 전 새로운 젊은 세대의 여성들에 의해 여권운동이 들끓었을 때 젊은 여성들이 경거망동이라도 한 것처럼 꾸짖고 훈계하는 나이 든 남성 지식인이 많았다. ‘내가 소싯적에 페미니즘 책을 좀 읽어서 아는데 너희의 주장은 진정한 페미니즘이 아니다’ 라는 식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말이 유행처럼 sns 상에서 회자되기도 했다.

이런 남성의 태도를 ‘맨스플레인(mansplain)’이라 명명하고 정교하게 논박한 이는 여권운동가이자 저술가인 리베카 솔닛이다. 맨스플레인은 남자가 자신만만한 태도로 언제나 여자가 무지하다는 것을 전제로 가르치려 들거나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세상의 전부인 양 설명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런 태도는 자신의 지식이나 알고 있는 정보에 대한 ‘과잉확신’에 의해 생겨난다. 과잉확신은 다른 의견이나 정보, 새로운 지식에 대한 무지함을 동반한다.

그런데 이런 태도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 특히, 회사의 오너나 장사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일수록 과잉확신에 차 자신이 새로운 것에 무지한 지도 모르고 자기 얘기만 줄곧 한다. 지식수준이 높은 사람일수록 그런 경향이 있고, 나이가 많을수록 그런 경향이 있다.

입을 연 만큼 지갑을 열겠다는 사람

내 주위에는 이런 친구도 있다. 친구들이 있는 자리이건, 선배와 후배들이 있는 자리이건 모임에서 이슈를 독점하며 맘껏 떠든 날이면 그 자리의 술값을 자기가 계산한다. 처음에는 우연이라 생각했지만, 관찰한 결과 자기가 좀 심하게 떠든 날이면 예외 없이 그 자리의 술값을 계산하는 것이었다. 반대로 자기가 떠들지 않은 날, 말발 좋은 다른 이에게 주도권을 뺏긴 날이면 술값을 내지 않는다. 분명 그 친구는 ‘입을 연 만큼 지갑을 열겠다’는 법칙을 갖고 있는 게 틀림없다. 

말하자면, 발언권을 돈 주고 사는 것이다. 지갑도 안 열고 입만 여는 이도 문제지만, 돈 내고 발언권을 사는 것은 새로운 문제를 낳는다. 돈을 냈으니까 자기 발언이나 발언권이 정당하고 믿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발언의 무게를 돈의 무게로 저울질하기 시작한다. 돈 없는 이는 떠들면 안된다. 새로운 유형의 '갑질' 문화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이 친구와 비슷한 이들이 무척 많다. 이래저래 제일 좋은 건 더치 페이다. 

이 사회에서 참다운 어른 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방법은 있다. 가장 큰 어른은 입을 닫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학생이 되는 어른이다. 가르치는 입장에 서 있다 생각하지 말고 배우는 입장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 필자 채희철은 강원도 삼척 출생으로 강릉에서 자랐으며, 추계예대 문예창작학과를 다녔고 1997년 계간 사이버문학지 <버전업> 여름호에 장편소설 <풀밭 위의 식사>를 게재하며 작가로 데뷔, 인문교양서 <눈 밖에 난 철학, 귀 속에 든 철학> 등의 저서가 있다.  1969년 생인 그는 현재 아저씨가 되어 강릉의 한 바닷가에 살고 있다.

 

저작권자 © 강릉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