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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할머니 17명뿐증언기록·역사교육, '홀로코스트 운동'처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6일 오전 대구 중구 서문로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서 열린 '대구·경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추모의 날' 행사에 참석해 세상 먼저 떠난 할머니들을 추모하고 있다. 2020.6.6/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서울=뉴스1) 온다예 기자 = 30년 일본군 '위안부' 운동이 기로에 섰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로 불거진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논란은 '위안부' 운동이 나아갈 길에 대한 커다란 화두를 던졌다.


이용수 할머니는 지난 5월7일과 25일 두 차례 기자회견에서 정의연과 전 이사장이었던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작심 비판하고 나섰다.

이 할머니는 정의연의 기금 운용이 불투명하며 지난 30년간 할머니들이 영문도 모르고 모금행사에 동원되는 등 단체에 이용당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992년 '위안부' 피해 문제 해결에 앞장서기 시작해 오랜 세월 정의연과 함께한 이 할머니였기에 그의 비판은 예상보다 파장이 컸다.

1차 기자회견 이후 정의연의 부실회계, 후원금 유용 등 각종 의혹이 불거졌고 정의연은 검찰 수사까지 받게 됐다.

회계부정 의혹 등은 검찰 수사를 통해 풀릴 문제지만, 해방 이후 해결되지 못한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한국 사회의 숙제로 남아있다.

2차 기자회견 당시 이 할머니는 정의연에 날을 세우면서도 '위안부' 운동의 정신은 계승해야 한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그는 "데모(집회) 방식을 바꾸자는 것이지 그만두자는 게 아니다"고 했다. 30년간 이어졌던 위안부 운동은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 것일까.

 

 

 

24일 서울 마포구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사무실. 2020.5.24/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 "위안부 운동은 곧 여성인권 운동"…기록·교육이 가장 절실

정의연과 정대협이 여러 부침은 있었으나 '위안부' 운동을 세계에 알리고 '보편적인 여성인권·평화 운동'으로 키우는 데 큰 공을 세운 것은 사실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1992년 1월부터 매주 수요집회를 열며 '위안부' 운동의 대중화에 앞장섰고 '위안부' 기림일 제정(8월14일), 평화비 건립 등을 통해 '위안부' 운동을 세계에 알리는 데 힘을 보탰다.

특히 2007년 7월30일 미국 하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된 것도 한국 위안부 운동의 힘이 컸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도 정의연과 정대협이 30년간 일궈낸 성과를 폄훼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강성현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교수는 "우리나라 '위안부' 운동은 일본 식민지 피해를 호소하는 민족주의 전파 운동에 그친 것이 아니라 보편적 여성인권 가치와 평화를 지향하는 운동으로 외연을 넓혔다"며 "그 덕분에 식민 경험이 없는 국가에서도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필화 이화여대 여성학 명예교수는 "'위안부' 운동은 국제적 연대를 이끌어내고 여성 인권, 평화와 관련한 여러 국제법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며 "지난 30년간 지켜온 운동의 가치를 망가뜨려선 안된다"고 밝혔다.

'위안부' 운동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지만 생존 피해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어 '위안부' 없는 위안부 운동, 포스트 '위안부' 운동이 머지않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우리나라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40명 중 생존자는 단 17명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위안부' 운동이 피해 증언에 의존해 성장한 만큼 피해 당사자들의 증언과 자료를 기록하고 보관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정대협이 처음 생겼을 때 일본은 '실존하는 증거'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위안부' 당사자가 꾸준히 피해 증언에 나서지 않았다면 일본군의 만행은 추상적인 문제로 끝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유럽에선 홀로코스트(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 피해자의 육성과 증언 등을 홀로그램을 통해 구현해 시민과 소통하기도 한다"며 "정부가 나서 피해 증언 등 관련 자료를 조사·취합하고 이를 아카이빙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자료 수집·기록이 제도화 됐을 때 '위안부'가 없는 시대에도 고(故) 김복동, 이용수 정신은 계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443차 일본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집회에서 정의기억연대, 평화나비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정의기억연대 지지 및 일본의 사죄를 촉구하고 있다. 2020.6.10/뉴스1 © News1 이성철 기자


◇ '위안부' 보는 시각도 바뀌어야…'피해자 중심주의' 재정립 필요

'위안부' 운동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기 위해선 위안부를 바라보는 국민의 의식 또한 바뀌어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언론과 사회가 여성인권보다는 일제에 고통받은 피해자 상에 집중해 '위안부' 문제를 봐왔다고 지적한다.

강성현 교수는 "'위안부' 운동은 가부장적이었던 당시 한국 사회의 모습을 뚫고 조직적·장기적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성들이 얼굴을 드러내면서 나타난 운동"이라며 "반(反) 성폭력 운동과 함께 성장했다"고 말했다.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한 재정립 또한 필요하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피해자의 뜻을 존중하는 운동 방식이나 합의 절차 등을 뜻한다. 그러나 '피해자의 뜻'은 매번 통일될 수 없으며 피해자의 요구가 운동단체의 지향점과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위안부' 운동은 정대협에서 정의연으로 이어지는 시민사회가 주도했다. 1990년 37개 여성단체가 모여 출범한 정대협은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의 최초 피해 증언 이후 '위안부' 운동의 중심이 됐다.

이후 정대협은 2016년 설립된 정의기억재단과 2018년 통합해 현재의 정의연으로 거듭났고 위안부 문제의 공론화에 앞장서며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해 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의연의 입장이 곧 국내 위안부 피해자 전체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란 착각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일본 정부의 법적 배상을 고집하는 정대협이 단체운동에 동의하는 피해자 중심으로 운동을 벌여 마치 정대협의 입장이 전체 위안부 피해자 입장인 것처럼 됐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최근 정의연을 둘러싼 논란이 이용수 할머니와 정의연의 대립 구도로 단순화된 것은 '정의연 입장=국내 전체 위안부 입장'이라는 '위안부' 문제의 소비방식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강 교수는 "모든 사람이 한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다만 위안부 운동은 보편적 가치를 위해 성장하는 운동이었고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어떻게 한 데 모아 운동의 가치를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1 <뉴스커넥트>를 통해 제공받은 컨텐츠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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