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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만나는 북한 문화유산] ⑪금강산 외금강과 신계사

[편집자주]북한은 200개가 넘는 역사유적을 국보유적으로, 1700개 이상의 유적을 보존유적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지역적 특성상 북측에는 고조선과 고구려, 고려시기의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지난 75년간 분단이 계속되면서 북한 내 민족문화유산을 직접 접하기 어려웠다. 특히 10년 넘게 남북교류가 단절되면서 간헐적으로 이뤄졌던 남북 공동 발굴과 조사, 전시 등도 완전히 중단됐다. 남북의 공동자산인 북한 내 문화유산을 누구나 직접 가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하며 최근 사진을 중심으로 북한의 주요 문화유산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서울=뉴스1) 정창현 머니투데이미디어 평화경제연구소장 = 금강산지역은 북한이 추진하는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 개발구상의 한 축이다. 2008년 7월 관광객 피격사건으로 모든 관광이 중단된 후 북한은 금강산을 국제관광지로 변모시켜 중국 등 해외관광객 유치에 힘을 쏟아왔다. 최근 북한은 금강산지역을 '현대적이며 종합적인 국제관광문화지구'로 개발하기 위한 '총개발 계획안'을 새로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1998년 금강산 관광길이 열린 뒤 네 차례 다녀왔지만 선현들이 그랬듯이 금강산의 비경은 하나하나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조선시대 방랑시인으로 유명한 김삿갓(김병연)은 "평생 금강산을 위해 시를 아껴 왔지만 금강산에 이르고 보니 감히 시를 지을 수가 없다"라는 소회를 남긴 바 있다.

 

금강산의 최고봉인 비로봉에서 내려다본 외금강 능선들과 장전항.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26.© 뉴스1

 

 

금강산 외금강 수정봉에서 내려다 본 장전항과 동해 전경.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26.© 뉴스1


금강산(金剛山)은 내금강·외금강·신금강·해금강의 4개 구역으로 나뉜다. 최고봉인 비로봉(1638m)이 솟아 있는 중앙 연봉을 경계로 서쪽은 내금강, 동쪽은 외금강, 외금강의 남쪽 계곡은 신금강, 동쪽 해안은 해금강이다. 또 관동팔경의 하나로 이름난 삼일포를 비롯하여 영랑호·감호 등 자연호수들이 있다.

 

 

 

 

 

금강산 외금강 만물상과 구룡연코스, 해금강과 삼일포의 관광노정도.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26.© 뉴스1


계절에 따른 아름다움이 각각 달라, 봄에는 금강산, 여름에는 봉래산(蓬萊山), 가을에는 풍악산(楓嶽山), 겨울에는 개골산(皆骨山)이라고 했다. 금강산에는 곳곳에 자연미와 인공미의 조화를 보이는 유서 깊은 사찰과 석탑·불상·불당(佛堂)·암자 등이 많았다.

삼국시대부터 신라의 화랑들이 금강산을 유람했다는 기록이 나오고, 예로부터 시인, 묵객, 여행가들이 앞 다투어 금강산을 찾았지만 길이 험해 쉽지 않은 노정이었다. 철도나 배·버스 등을 타고 안내책자나 관광안내도를 들고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형태의 근대적 관광 혹은 여행은 일제강점기에 도입됐다.

금강산여행의 경우 조선시대에는 적어도 한 달 이상이 걸렸지만 근대적인 교통수단 도입 이후에는 5일 내지 일주일이면 가능하게 됐다. 특히 1914년 용산-원산을 잇는 경원선이 개통되고, 1931년 경원선역인 철원역에서 금강산의 내금강역을 연결하는 금강산전철이 개통되자 금강산으로의 길은 좀 더 넓게 열렸다. 금강산전철 운임이 당시 쌀 한 가마 값인 7원 56전이었지만 1930년대 후반에는 이용객이 15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또한 외금강 쪽으로 장전항이 개발되면서 금강산을 가는 관문역할을 했다. 1930년대부터 금강산은 적은 시간과 돈, 노력으로도 수많은 관광객과 수행여행단이 찾는 명소가 된 것이다.

 

 

 

 

 

 

1930년대에 수학여행단이 금강산 천선대에 올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26.© 뉴스1


계곡미가 뛰어난 외금강은 비로봉을 경계로 내금강과 동해안 해금강 사이에 펼쳐져 있다.

온정·만물상·구룡연·수정봉·천불동·선창·백정봉 구역 등 7개 명승구역이 있는데, 온정리에서 한하계·육화폭포·만상정·천선대·만물상을 도는 만물상 코스와 온정리에서 신계사터·옥류동·비봉폭포·구룡폭포·상팔담을 도는 구룡연 코스에서 외금강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외금강의 첫 탐승지는 만물상이다.

온정리에서 온정령을 따라 오르다가 육화암을 지나면 나타나는 골짜기가 바로 만물상이다. 귀면암, 삼선암, 절부암, 안심대, 하늘문, 천선대 등 금강산의 오봉산(五峰山, 1264m) 일대 기암괴석과 봉우리들이 즐비한 곳이다. 세상만물의 모형을 모두 한곳에 옮겨 놓은 모습이어서 만물상(萬物相)이다. 옛날 사람들은 만물상을 두고 하느님이 만물을 창조할 때 먼저 시험 삼아 만든 표본이라는 뜻에서 만물초(萬物草)라고도 불렀다. 만물상은 "금강은 천상 칠보 중의 하나요 지상에서는 만물로 나타난다"하여 금강산의 제일승으로 꼽혔다.

 

 

 

 

 

 

금강산 외금강의 귀면암과 만물상 전경.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26.© 뉴스1

 

 

 

 

 

금강산 외금강의 만물상 코스의 삼선암.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26.© 뉴스1


버스를 타고 '찬 안개가 낀 골짜기'라는 이름이 붙은 하한계를 지나 미인송이 쭉 뻗어 있는 관음연봉을 바라보면서 온정령의 수십 개 고갯길을 올라가면 망상정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걷기 시작해 얼마 오르지 않아 삼선암이 나온다. 하늘에서 신선들이 내려와서 바위가 되었다는 곳이다. 만물상 바위들을 감상하며 험상궂은 귀신 얼굴 같다 하여 붙여진 귀면암, 도끼로 찍어놓은 듯한 절부암 등을 감상하며 오르면 힘이 들어 도저히 올라가지 못할 즈음 안심대에 도착하고, 곧바로 망장천(忘杖泉)이라는 샘물이 나온다. 이 샘물을 한 바가지 먹기만 하면 다시 원기를 회복해서 지금까지 짚고 왔던 지팡이를 잊어버리고 날 듯이 올라간다고 해서 망장천이라고 불리게 됐다고 한다.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고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더 불어나지 않는다는 망장천 샘물을 마시고 네 개의 쇠사다리를 타고 오르면 깎아지른 바위벽 능선 중간쯤에 '하늘문'이라 하는 자연 석문이 나온다. 이 문은 하늘에 오르는 첫째가는 문으로서 8개의 금강산 자연 석문(石門)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이 석문을 통해 천선대(天仙臺)로 가는 길이 열린다. 천선대에는 옛날 만물상의 경치가 좋아 하늘에서 천녀가 이 봉우리에 내려와 즐겼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곳에 오르면 만물상과 관음연봉 등 일망무제(一望無際)의 전망이 펼쳐진다.

 

 

 

 

 

금강산 외금강 만물상 코스의 천선대 직전에 있는 하늘문.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26.© 뉴스1

 

 

 

 

 

금강산 외금강 천선대에서 바라다 본 관음연봉 전경.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26.© 뉴스1


외금강의 두 번째 탐승지는 구룡연과 구룡폭포다. 북측 음식점인 목란관에서 시작되는 구룡연 코스는 절경으로 널리 알려진 구룡폭포와 구룡연, 상팔담, 비봉폭포를 비롯하여 연주담, 옥류담 등 유명한 폭포와 연못들이 집중되어 있는 곳으로서 계곡의 아름다움이 뛰어난 곳이다.

본격적인 산행에 앞서 초입에 있는 신계사(神溪寺, 국보유적 제191호)를 둘러볼 수 있다. 구룡연 코스의 출발점에 있는 신계사(神溪寺)는 절 주위가 온통 울창한 노송으로 둘러싸여 있고, 문필봉·관음연봉·세존봉·집선봉 등 외금강의 절경을 사방에 거느리고 있어 영험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신라의 보운(普雲)이 519년(법흥왕 6)에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확실치 않다. 유점사·장안사·표훈사와 함께 금강산의 4대 사찰로 꼽혔다. 근현대의 고승인 석두(石頭)·효봉(曉峰)·한암(寒巖) 등을 배출한 이름난 절이기도 하다.

 

 

 

 

 

2007년 신계사가 복원되기 이전 신계사터 전경.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26.© 뉴스1

 

 

 

 

 

파괴되기 이전 일제강점기 때 신계사 대웅전과 3층석탑 모습.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26.© 뉴스1


원래 이름은 신라의 신(新)자를 따서 신계사(新溪寺)라 하였으나 뒤에 귀신 신(神)자의 신계사로 바뀌었다.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일화가 전한다. 신계사의 절터 계곡인 신계천에는 해마다 많은 연어가 올라와 사람들이 이 연어를 잡기 위해 몰려들었다. 이를 본 보운이 살생을 금하는 불교 교리에 따라 신통력을 발휘해 연어떼가 계곡으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때부터 신계사의 신(新)자가 신(神)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조선시대까지 신계사는 11개의 전각을 거느린 큰절이었다. 대웅전 앞에 삼층석탑이 있고, 그 동쪽에 칠성각, 대향각, 극락전이, 서쪽에 나한전, 어실각이 배치되어 있었다. 또 남쪽에 만세루 좌·우에 향로전과 최승전, 그리고 부속건물들이 더 있었다. 그러나 1951년 6·25전쟁 때 건물이 모두 불에 타 없어지고 삼층석탑만 남게 됐다. 신계사 3층석탑(보존유적 제1234호)은 장연사3층석탑(국보유적 제101호), 정양사3층석탑(국보유적 제186호)과 함께 금강산 3대 고탑으로 꼽힌다.

 

 

 

 

 

금강산 ‘3대 고탑’으로 꼽히는 신계사3층탑, 장연사3층탑, 정양사3층탑(왼쪽부터)의 모습.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26.© 뉴스1


2004년 대한불교조계종과 현대아산(주), 북측 조선불교도연맹이 공동으로 대웅전 복원을 시작했고, 명부전을 비롯한 11개 전각이 복원돼 2007년 10월에 완료됐다. 남북이 공동불사로 복원한 첫 사찰이다.

 

 

 

 

 

 

2007년 남북 공동불사로 복원된 신계사 전경.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26.© 뉴스1

 

 

 

 

 

2007년 남북 합작으로 복원된 신계사 대웅전과 5층석탑 전경.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26.© 뉴스1


신계사에서 시작하는 구룡연 등산로는 목란관→수림대→양지대→삼록수→금강문→연주담→구룡폭포→구룡대(상팔담)으로 이어지는 길로, 왕복 약 4∼5시간이 소요된다.

 

 

 

 

 

2008년 금강산관광이 중단되기 전 구룡연 등산로 앞에서 관광안내원이 설명하고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26.© 뉴스1

 

 

 

 

 

구룡연코스 중간에 있는 비봉폭포. 금강산 ‘4대폭포’ 중의 하나로 꼽힌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26.© 뉴스1


구룡폭포는 금강산에 있는 폭포 가운데 가장 크다 아름답다. 이 폭포는 설악산의 대승폭포(大勝瀑布), 개성 대흥산성(大興山城)의 박연폭포(朴淵瀑布)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폭포 중 하나로 꼽힌다. 깎아지른 암벽에서 내리 붓는 높이 74m, 폭 4m의 구룡폭포는 웅대하고 장엄한 모습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언론인이자 학자였던 문일평은 금강산을 유람하고 지은 동해유기(東海遊記)에서 "내외금강에 연담계폭(淵潭溪瀑)이 몇천 백으로 헤일 수 있으나, 오직 구룡연으로서 폭포미의 극치를 삼는 것이 마땅하니, 이것이 금강뿐 아니라 세계적 절승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구룡폭포를 실감한 소감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구룡연은 깎아지른 암벽에 내리붓는 200여 척의 폭포로서 그 웅대하고 장엄한 것이 사람을 압도하여 형용할 수 없는 일종의 위협의 감을 주었다. 나는 일찍이 박연폭포를 보았지만 박연폭포가 비록 기승하다고 하나 열 박연을 가지고도 한 구룡연을 대적할 것인가. 그러나 구룡연은 하나로써 미치는 것이 아니요, 이 밖에 상팔담(上八潭)이란 것이 있어서 대자연미를 이 위에는 더할 수 없이 아주 구족(具足)하게 만들어놓은 조화의 기적이다."

 

 

 

 

 

금강산 외금강 구룡대에서 내려다 본 상팔담 전경. 멀리 금강산의 최고봉인 비로봉이 보인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26.© 뉴스1


폭포 앞 넓은 바위에는 신라 말 최치원이 시를 새겨놓은 곳이 있고, 폭포 우측 바위벽에는 '미륵불(彌勒佛)'이라는 거대한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글씨는 영친왕(英親王)의 스승을 지낸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이 1919년에 쓴 것이다.

폭포 밑에는 돌절구 모양으로 깊이 패인 구룡연(九龍淵, 깊이 13m 정도)에는 옛날 금강산을 지키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폭포 위에는 여덟 개의 맑고 푸른 못이 층층으로 있는데 이것이 '금강산 8선녀'(선녀와 나무꾼)'의 전설로 유명한 상팔담(上八潭)이다. 구룡연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구룡대에 도착하는데, 여기서 상팔담의 전경과 비로봉 능선을 감상할 수 있다.

금강산 외금강의 절경은 해금강과 삼일포에서 완성된다. 해금강은 외금강의 동쪽에 펼쳐진 아름다운 호수와 바다절경을 끼고 했다. 특히 맑은 물 밑과 물 위로 외금강의 만물상을 바다로 옮겨 온 것 같다고 해 이름 붙은 '해만물상'이 유명하다. 장전항과 해금강 사이에 있는 삼일포는 수면이 맑고 기괴한 암석과 36봉이 호수에 비치어 절경을 이룬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호수 중 제일 경치가 아름다운 호수로,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혔다. 삼일포라는 이름은 신라의 사선(四仙)이 3일간 이곳에서 놀았다는 전설에서 비롯됐다.

 

 

 

 

 

 

금강산 해금강의 ‘해만물상’ 전경. 외금강의 만물상을 바다로 옮겨 온 것 같다고 해 ‘해만물상’이라고 한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26.© 뉴스1

 

 

 

 

 

삼일포 전경.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26.© 뉴스1


남쪽의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보면 금강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진다. 금강산은 현재 남쪽의 설악산과 함께 각각 세계(자연)유산 잠정목록에 올라있다. 하나의 산줄기인 금강산과 설악산을 따로 세계유산에 등재할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추진하고, 금강산-설악산을 연계하는 국제관광이 실현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뉴스1 <뉴스커넥트>를 통해 제공받은 컨텐츠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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