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예술과 도박 사이에서

유럽축구연맹 (이하 UEFA) 챔피언스 리그, ‘별들의 전장’에 먹구름이 끼었다. 이변이나 기적이 예술의 무대에 감동과 묘미를 주기도 하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인위적이라면 축구라는 예술에 드리운 어둠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실감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2016-2017시즌 챔피언스 리그 (이하 챔스) 8강 진출 팀들이 3월 16일 새벽 (이하 강릉 시간) 무렵에 확정되었다. 모나코 공국의 루이 2세 스타디움과 스페인의 비센테 칼데론에서 종료 휘슬이 울리면서 16강 토너먼트가 일단락되었다. AS 모나코는 맨체스터 시티를 3-1로 꺾으면서 최종 스코어 합계 6-6, 원정 다득점으로 8강행을 일궈냈다. 아틀레코 마드리드는 비록 홈에서 바이어 레버쿠젠과 득점 없이 비겼지만 1차전 원정 승리 탓에 무난히 별들의 ‘라스트 에잇’에 합류했다.

  스포츠 세계에서 언제나 그러하듯, 16강 대진 역시 예상과 의외 사이에서 출렁이는 토너먼트였다. 비록 조별 라운드에서 다소 주춤했지만 레알 마드리드와 바이에른 뮌헨 모두 명성에 걸맞게 혹은 예상대로 8강에 안착했다. 또 다른 우승 후보군, 유벤투스와 아틀레티코 또한 큰 무리 없이 이변의 희생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번 시즌 분데스리가에서 기복을 보여 주는가 하면 16강 1차전 원정 경기에서 패배의 쓴 맛도 보았지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역시 ‘객관적 전력의 근소한 우위’를 선보이며 8강행에 성공했다. 이상은 어느 정도 예측된 결과였다.

  논의 혹은 논란의 중심은 나머지 경기들에 있었다. 우선 FC 바르셀로나 (이하 바르사)와 파리 생제르망 경기는 말 그대로 지옥과 천국을 오가는 롤러코스터였다. 최근 챔스 성적을 고려하더라도, 적어도 8강 후보군으로 분류되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두 팀이었다. 두 팀 모두에게 어쩌면 ‘재수 없는 대진’이긴 해도 바르사 우위가 예견되었다. 하지만 누가 꿈엔들 바르사의 또 다른 대참사를 상상이나 했을까!

  문제는 여기서 롤러코스터가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2차전 홈경기에서 바르사는 하나의 ‘기적’을 만들었다. 2차전 스코어 6-1 대승이었다. 어쩌면 타짜나 스팅 등과 같은 영화들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을 연출했다. 선수들 집중력 차이나 오심을 배제하더라도 ‘어떤 누가?’라는 질문의 여지가 남아 있는 경기였다. 흥미로운 것은 바르사의 직전 두 경기 모두 동일한 스코어 차이를 낸 승리였다는 점이다.

  새삼 흥분의 도가니에 찬 물을 끼얹으려는 바는 아니다. ‘비상식적인’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한 푸념 정도로 이해되었으면 싶다. 챔스 8강 전력의 팀들이 대승과 대패를 거듭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강팀들 간 대결에서 현격한 스코어 차이가 나는 것은 드물지만 전적으로 배제되기는 어렵다. 지난 월드컵에서 독일과 브라질 경기에서도 그런 가능성은 나타났었다. 하지만 한 달 이내에 홈과 원정으로 치러지는 경기에서 롤러코스터 결과는 단순히 드문 것이 아니라 의심스러운 면에 초점을 둘 법하다. 도박, 승부 조작, 흥행 등의 함수 관계를 따져볼 필요가 여기에 있다.

  한 편의 ‘인위적인 기적’은 ‘예술’로서 기능 가능한 축구에 덧칠을 요구할 성싶다. 감동 뿐 아니라 기묘한 기술적 측면과 전술적 측면 등등이 어우러져 축구는 예술로 승화되기 쉽다. 그런 예술적 순기능에 ‘외부의 간섭이나 입김’이 더해지면 즐김보다는 비난의 역풍에 내몰리기 쉽다. 이번 시즌 챔스 16강 토너먼트를 보면서 예술과 ‘외설’이 교차되었던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은 기자만의 주관적 편견이었을까!

  대다수 스포츠 경기에 상대적인 측면이 없지 않아 있고 각종 다양한 변수들이 경기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는 축구공이 둥글어 어디로 승부의 추가 기울지 모른다는 점에서 확인될지 모른다. 하지만, 어떤 이변이나 기적은 ‘정교하게 조작된’ 결과물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승부의 세계 이면에는 ‘도박’이라는 괴물이 도사리고 있는 탓이다. 세계의 도박사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공들이는 스포츠 분야들 중 하나가 챔스란 사실은 익히 알려진 바다.

  인생 자체가 도박이란 말에서 보듯, 도박이 반드시 음성적이거나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치달리는 것은 아니다. 도박 역시 어느 경지에 이르면 예술이란 ‘억지’가 있듯, 도박을 스포츠, 특히 축구에 있는 하나의 변수 정도로 여기고 그렇게 머물면 도박이란 용어에 그다지 눈살 찌푸릴 필요도 없을 성싶다. 도를 넘지 않은 채 주변적이거나 부수적인 변수로 존재한다면 그저 그런 묘미일 뿐이다. 마치 적당한 선의 스포츠 토토나 베팅 등이 스포츠를 즐기고 그것을 활성화하는데 작은 양념처럼 작용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무리수는 또 다른 희생을 요구하기 쉽다. 바르사가 기적을 일구며 8강에 진출하면서 챔스가 마치 스페인 라 리가 팀들의 행사로 전락할 ‘위기’에 몰렸다. 불행 중 다행일까? 객관적 전력의 열세와 원정 패배를 극복한 레스터 시티가 세비야에게 절망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점유율 축구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추세라지만 세비야의 좌절은 무언가 형언하기 어렵거나 석연찮은 측면이 있다. 퇴장과 비하 발언 논란도 그렇지만, 이른바 ‘헐리웃 액션’에 대한 시각 차이는 재고될 예일 듯싶다.

  물론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이하 EPL)에서 유일하게, 한 세기를 넘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8강 고지에 오른 레스터 시티를 폄하하자는 것이 아니다. 비록 강등 위기를 넘기기에 급급한 상황에 설상가상으로 감독 교체라는 악재에 시달렸지만 레스터 시티가 그들의 ‘동화’를 다른 무대인 챔스에서 재현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카스퍼 슈마이켈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레전드 골키퍼인 그의 아버지만큼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그는 원정과 홈경기에서 두 차례의 페널티킥 선방 쇼를 펼쳐 보이면서 결과적으로 ‘리그의 자존심’이 되었다.

  하지만 단순한 우연의 연속일까! 공교롭게도 레스터 시티의 기사회생은 맨체스터 시티의 8강 좌절로 상쇄 또는 대체 되었다. 또한 프랑스 리그앙을 대표하는 파리 생제르망의 피눈물은 AS 모나코의 환희로 이어졌다. 아마도 UEFA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지 모른다. 라 리가 강세 속에서 그나마 골고루 배분된 듯싶은 인상의 8강 티켓들 탓이다.

  ‘흥행의 유혹’ 속에서 UEFA가 과연 지나치게 인위적으로 엮이고 꼬인 실타래를 제대로 풀고 납득하기 어려운 뜻밖의 상황을 바로 잡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오는 17일 오후 7시 50분에 진행할 예정인 8강 대진 추첨이 기대되는 또 다른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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