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son의 축구이야기

승자만이 모든 것을 취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슬픈 일일 터다. 하지만 축구에서, 특히 ‘더비’ 경기 – 동일한 연고지를 쓰는 스포츠 팀들끼리 하는 시합 -에서 예외적으로 적용될 수도 있다. 승자만의 더비는 축구의 울고 웃는 이야기에 갈등적 요소를 가미하면서 축구에 대한 흥미를 더욱 진작시키고 더비 나름의 역사를 영속시키기 때문이다.

여타의 더비 경기처럼, 마드리드 더비 역시 승자의 환희와 패자의 눈물이 대비를 이루며 내일의 복수혈전을 기약한다. 사실 승자란 명암의 교차에서 두드러진 오늘일 뿐 반드시 내일이란 법이 없기에 오늘을 맘껏 즐기는 것이 암묵적으로 허용된다.

오늘 새벽 (강릉 시각 기준) 비센테 칼데론 (마지막 시즌을 맞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홈구장)에서 ‘잠정적인 마지막 더비’를 화려하게 장식한 것은 레알 마드리드였다. 그 무대의 주인공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였다. 프리킥, 페널티킥, ‘원 샷 원 킬’ 등의 다채로운 모습으로 호날두는 자신의 라 리가 39번째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서른 즈음에 이르러 경기력이 둔화되었다는 비난의 소리도, 강팀 상대로 잠수 타기 일쑤였다는 비판마저도 한 순간에 날려버린 활약이었다.

‘골라인 판독기 필요 논쟁’을 다시 점화시킬 법한 헤더(헤딩) 장면 연출에서 보듯, 절정의 골 감각과 비견해도 손색이 없을 몸놀림이었다. 세월의 무게에서 얼마나 기복 없이 일관된 감각을 유지할지 기대하게 만드는 경기력이었다. 특유의 ‘호우’ 세리머니에 첨부된 다양한 세리머니도 득점 장면만큼이나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한 마드리드 더비였다. 이날 득점들로 말미암아 호날두 자신은 마드리드 더비에 관한한 팀의 역대급 신기록을 작성할 수 있었다.

물론 호날두 혼자만의 성과가 아니라 팀이 거둔 승리였다. 지네딘 지단 감독은 자신의 감독 데뷔이후 첫 마드리드 더비에서 패배의 분루를 삼켜야 했었다. 어제의 암영이 그에게 유익한 교훈이었을까? A 매치 여파와 부상 병동으로 시름에 젖었던 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면서 마침내 승리의 여신을 안을 수 있었다.

그는 호날두를 ‘원톱’마냥 기용하는 것 등의 새로운 전술을 구사했고 불가피했지만 다소 파격적으로 선수단을 구성하거나 운용했다. 이렇듯 그는 레알 마드리드가 오랜만에 비센테 칼데론에서 원정 승리를 낚는데 적절한 기여를 보탰고 그간의 마드리드 더비 수난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개인적으로는 감독으로서 그의 역량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말끔히 씻을 수 있는 발판이 될지 모른다.

영화 예술만큼이나 스포츠 예술에도 주연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각광 받는 ‘숨은 공신’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부상에서 복귀한 루카 모드리치가 그들 중 하나였다. 토니 크루스가 부상으로 빠진 공백을 충실히 메우면서 그는 종횡무진 활약했다. 특유의 ‘탈압박’ 능력을 과시하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크루스를 대신하여 팀의 코너킥 등의 킥을 전담했다. 자신의 클래스를 여실히 보여준 더비 경기였다.

이스코 역시 미드리드 더비를 통하여 공신 반열에 오른 듯싶다. 달리 말하면, 그의 공 다루는 감각이며 창의성이 돋보인 승부였다. 경기 흐름을 끊는 경향이 있거나 공간 창출을 위한 창의적인 능력이 다소 결여된 모습 때문에 기대만큼 많은 아쉬움을 남기던 그였다. 하지만 자신을 향한 비판에 귀 기울인 탓인지, 자신의 한계와 역량을 정확히 이해하고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한 결실을 맛본 하루였을 성싶다. 공을 ‘논스톱’으로 처리하고 스스로 공간을 창출하려는 움직임과 번뜩이는 공간 침투 패스는 그에게 인생 반전의 계기를 제공할 듯싶을 정도로 돋보였다.

케일러 나바스 골키퍼 또한 인상적이었다. 그는 라 리가 12라운드 더비 경기에서 몇 차례 선방 쇼를 펼치며 예전의 기량을 유감없이 선보였다. 무실점 경기가 거의 없었던 탓에 우려의 소리가 있었으나 큰 경기에 강한 면모를 보이며 팀의 승리에 헌신했다. 그 곁에는 마르셀루와 다니엘 카르바할이 있었다. 그들의 명품 측면 수비는 익히 알려진 바이며 이번 경기에서도 역시나 명불허전이었다.

한편 마드리드 더비 악몽에서 스스로 벗어남으로써 경기 결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선수들도 있다. 라파엘 바란, 나초 페르난데스, 가레스 베일 등이 대표적이다. 세르히오 라모스와 페페가 대체로 주전 격으로 중앙 수비 조합을 이루었으나 부상이나 혹은 그 파장으로 더비 경기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기에, 바란과 나초 조합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조합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게감이 떨어지거나 불안 요소로 예상되었다.

지난 시즌 마드리드 더비에서 완패의 상처를 입었던 그들이었기에 더비 경기 직전까지 팬들의 우려는 단순한 기우가 아니었다. 하지만 경기 시작과 동시에 팬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그들의 ‘뜻밖의 선전’이었다. 상대편 선수에게 슈팅을 허용했지만, 그들은 중앙 침투 패스나 돌파를 철저히 차단했고 상대방의 측면 돌파에 이은 공중 볼 경합에서도 밀리지 않으며 무실점 방어에 성공했다.

베일 역시 부담감을 덜어 버린 경기였다. 주전 공격수들, 특히 카림 벤제마와 호날두가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상황에서 공격 진영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던 베일이다. ‘호날두 시대가 가고 베일 시대가 도래’한 것이 아닌지 섣부른 추측이 난무한 이유였다. 그러나 베일 역시 리그 한정판 마드리드 더비에서 취약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챔피언스 리그’ 경기를 제외하면 득점 빈곤에 시달렸던 그였다. 그나마 호날두의 해트트릭을 결정하는 정확한 크로스 도움으로 베일은 중요한 공격 포인트를 얻으면서 체면치레를 할 수 있었다.

다른 한편 레알 마드리드에는 ‘약방의 감초’ 같은 역할의 담당자들이 있다. 카세미루가 그 중 하나이다. 하지만 지금은 부상 중이어서 레알 마드리드가 고민하는 포지션이 그의 자리 수비형 미드필더이다. 그런 탓에 코바치치와 더불어 루카스 바스케스가 이번 더비 경기에서 돋보이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비록 공격적인 재능을 발휘하는데 주저함이 없지만, 바스케스는 왕성한 체력을 바탕으로 팀의 수비 강화에 핵심을 이루었다. 스피드와 드리블 능력을 갖춘 바스케스는, 후반 막바지에 교체 투입된 일명 ‘데뷔 골의 사나이’ 아센시오와 ‘조커’로서 역할에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모라타 등과 더불어, 레알 마드리드의 미래 중 하나임을 여실히 드러냈다. 또한 그가 최근 들어 공수 양면에서, 특히 수비 강화 전술에서 경시될 수 없을 정도로 급부상 중임을 입증하는 마드리드 더비였다.

결국 마드리드 더비에서 팀 구성원들 특유의 색채와 역할 등을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했던 것이 레알 마드리드였다. 행운 역시 그들 편이었다. 지난 시즌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대한 복수혈전을 다짐했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분루를 다시 한 번 흘려야 했다. 그것도 22경기 연속 홈구장 무패를 기록 중이었던 비센테 칼데론에서 패했기에 더욱 충격적이었으리라. 시메오네 감독의 역동적인 몸짓도 홈팬들의 열정적인 성원을 부채질하던 그의 경쾌한 몸놀림도 패배의 분위기 속에서 퇴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순항은 멈추었다. 마드리드 더비는 올해도 변함없이 어제의 광영이 오늘의 암영이 되는 순간이었다. 또한 내일을 기약하면서 오늘을 다짐하는 시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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