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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됨을 사랑하고 자서전을 쓰자[연재칼럼] 50 이후의 남자, 아저씨가 사는 법

최근에 60대에 막 접어 든 사람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군살도 없고 탄력 있는 균형 잡힌 몸매를 하고 계셨다. 비결이 뭔가 하니 헬스클럽을 열심히 다니신다고 했다. 일 년에 한 두 번쯤은 하프마라톤 대회에 참여해 체력을 뽐내기도 한다.

사진=Pixabay

체력이 무슨 소용인가

그런데 술을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을 마신다. 술을 같이 마실 친구도 없어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40대의 카페 남자 주인을 상대로 술을 마신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다. 곁에서 보니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아내 얘기를 한다. 아내에게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는데 그것이 술주정이라 잠자코 들어줄 사람은 그이 앞에서 졸며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카페 주인밖에 없는 듯 했다.

카페 주인도 이미 충분히 지치고 피로한 삶을 살기에 자기 보다 나이가 많은 남의 하소연에 귀 기울여 줄 여유 같은 것은 없어 보였다. 듣는 입장에선 시간낭비다. 하지만 동네의 허름한 카페 주인이라면, 그런 무소용의 얘기도 듣는 척 공감의 고갯짓을 해줘야 한다.  

그러다 사단이 났다. 체력을 자랑하던 그가 최근 암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초기라 수술을 받고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암의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아내 사후 극심한 고독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어떤 대상을 잃은 슬픈 감정인 ‘애도’가 충분치 않았을 때 ‘우울’에 빠진다고 한다. 우울은 사랑하는 대상의 사라짐에 대해 자아가 지나치게 책임을 느껴 스스로를 비난하고 처벌하는 망상에 빠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고독 스트레스는 우울이 아니다.

나는 그가 사별의 고통을 얘기할 때 그의 아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지를 듣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아내가 없어 얼마나 곤궁하고 외로운지 그 생활상만을 알게 될 뿐이었다. 말하자면, 사랑하는 아내가 죽어 슬픈 것이 아니라 아내가 없어 불편하게 사는 자기자신의 처지가 슬픈 것이다.

한국 사회은 지나치게 남성 노인들의 고독사를 걱정하곤 한다. 나는 남성 노인들에게 나타나는 고독사의 원인을 보살핌을 받는 것에 익숙한 남자들이 늙어서 홀로되는 상황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적응하지 못해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홀로서기가 필요한 한국 남성

나이 든 남성들에게 홀로됨은 인과응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단지 지금부터라도 홀로서기를 하라고 말하고 싶다. 홀로됨을 받아들이고 자기 혼자 힘으로 시간을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지금의 40~50대는 미리부터 이 연습을 해야 한다. 보살핌을 받는 것과 단절해야 한다. 이 사회의 기득권인 중년 남성은 현재의 권력에 취해 가정과 직장에서 자신을 떠받치고 있는 감정 노동과 돌봄 노동이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필요한지 잘 모른다. 그것은 늙어봐야 아는 것이다.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아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남성들은 홀로되기가 싫어서 기득권을 내려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효’(孝)라는 관념은 사대부가 권력을 유지하는 통치체계에 핵심이 되는 개념이었을 것이다. 나는 ‘효’라는 관념을 대할 때마다 홀로됨을 견디지 못한 늙은 남성들의 교활한 술책이 읽힌다.

이제 더 이상 나이 든 남성을 위해 헌신하는 사회는 없다. 그런 시대는 지났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유일한 선택지는 홀로됨을 사랑하는 것밖에 없다. 그 방법의 일환으로 ‘자서전 쓰기’를 추천한다. 아무도 듣지 않는 술주정을 할 바에야 자서전을 쓰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자서전을 써보라고 하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유독 쓸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자기 자랑을 떠벌리는 술자리를 가질 시간은 많으면서 뭐라도 한 줄 쓸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본심은 쓴다는 행위가 가져오는 고독과 투명하고 정직하게 자신을 대해야 하는 객관의 시간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두렵기 때문이다. 술자리에서 침을 튀겨가며 했던 자랑은 쓴다는 행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증발하기 마련이다. 어쩌면 한 페이지 작성도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런 상황이기에 더욱 더 자서전쓰기에 도전하길 권한다.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해왔는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앞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자.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은 유효하다. "너 자신을 알라."

 

* 필자 채희철은 강원도 삼척 출생으로 강릉에서 자랐으며, 추계예대 문예창작학과를 다녔고 1997년 계간 사이버문학지 <버전업> 여름호에 장편소설 <풀밭 위의 식사>를 게재하며 작가로 데뷔, 인문교양서 <눈 밖에 난 철학, 귀 속에 든 철학> 등의 저서가 있다.  1969년 생인 그는 현재 아저씨가 되어 강릉의 한 바닷가에 살고 있다. 

 

채희철  kikiba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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